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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대타협으로 희망의 나라로 함께 갑시다> (월드컬처오픈 강연)
등록일 20170326 조회수 734



“희망의 나라로”

-국민 대타협으로 희망의 나라로 함께 갑시다-



안녕하세요. 홍석현입니다.

휴일 이른 오후에 이렇게 우리 강연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하고 반갑습니다.

월드컬처오픈이 지금 간단히 설명을 들으셨겠지만, 99년부터 시작했으니 벌써 20년 가까이 된 것 같습니다. 수많은 컬처디자이너분들이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미국, 중국, 사회 곳곳에서 밝은 사회를 만드는데 활약을 하고 있어서 가슴이 뿌듯하고 또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저도 한 사람의 컬처디자이너로서 삶을 영유해가려고 많은 노력을 해왔습니다.

 

요즘 저는 참 부끄럽습니다. 특히 아이들과 젊은이들에게 많은 미안함과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오늘 강연을 통해 저의 그 부끄러운 고백도 하고, 또 부끄러움을 모르는 작금의 시대 상황을 함께 반성하고 걱정하면서 저의 진솔한 마음을 여러분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희망찬 대한민국의 미래를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야 되지 않느냐 하는 그런 마음을 전해봅니다.

 

제가 중앙일보와 JTBC회장직을 떠난 지가 이제 아주 오래된 것 같은데 일주일 밖에 되지 않습니다. 여러 추정과 추측이 돌고 있는 것을 제가 듣고 있습니다.

그때 고별사에서 저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홍석현은 대한민국의 미래에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자 (중앙일보·JTBC) 떠난다”.

바로 그렇습니다.

‘대한민국의 미래 그리고 작은 힘’.

오늘 여러분과의 만남에선 여러분과 대한민국의 미래에 관해서 저의 비전과 생각을 펼쳐보려고 합니다. 오늘 주제는 사실 일요일 오후에 말씀을 드리기에는 조금 무거운 주제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평소 제가 깊이 고뇌해 왔고 생각해 왔던 것이기 때문에 오늘 가감없이 여러분들에게 전달해 보고 싶습니다.

아마 제가 말주변이 없기 때문에 재미가 없으실 지 모르겠습니다.

지루하시더라도 경청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한 비전과 생각을 공유하고 싶었다'

 

지난 몇 달 촛불을 보면서 저는 많은 고민과 의문을 가지면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태극기 광장에서 퍼지는 “이게 어떻게 만든 나라인데” 하는 걱정의 목소리를 저는 고민 속에서  지켜보았습니다.

‘이게 나라냐?’는 촛불광장의 물음에 ‘이게 정말 나라다’, ‘이런 나라를 우리가 만들어야 되지 않겠나’ 하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또 많은 고뇌를 했습니다.

 

오늘 강연 제목은 ‘희망의 나라로’입니다.

여러분 들어 보셨겠죠? 현제명 선생의 같은 이름의 노래가 있습니다. 제가 어려서도 많이 부르고 또 즐겨 들었는데, 가사 중에 자유, 평등, 평화, 행복 가득한 곳, 희망의 나라로, 그것이 기억이 납니다. 정말 그런 나라를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을 우리는 다 갖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와 같은 희망의, 저 나름대로의 전략을 여러분과 함께 공유해 보고 싶습니다.

 

'이게 정말 나라냐?'라는 물음에 '나라다운 나라는 이렇게 만든 것이다'라고 답하고 싶었어'

 

광화문 광장과 서울광장 각각이 발 디디고 있는 위치는 다르지만, 그 분들이 속에 담고 있던 열망과 염원은 하나였다고 생각합니다. 공정하고 투명한 나라, 법치를 바탕으로 한 정의로운 사회, 다양한 가치와 시선이 공존하는 사회, 모두가 잘 사는 사회, 활기차면서 평화롭고 자유로운 대한민국일 것입니다.

이런 좋은 나라에 대한 꿈과 열망을 가진 국민이 있는 한, 나라의 장래는 밝고 힘차다는 것이 저의 확신입니다.

 

어느 쪽 광장이건 그들의 목소리는 이제 대한민국이 새롭게 거듭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민심은 국가 대변혁을 통해 새로운 나라, 새로운 출발을 요구하고 있지요.

우리 사회의 부조리와 폐단, 모순과 악습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언젠가 터질 시한폭탄이었고 이번에 한계점에 다다르면서 폭발한 것 입니다.

 

여러분,

대한민국은 지난 70년 간 민주화와 산업화라는 위대한 승리를 쟁취했습니다.

온 국민과 지도자가 어울리고 합작해 난관을 뚫고 이루어 낸 거대한 쟁취입니다.

전 세계를 향해 자랑스러워 할 만한 일이고, 우리가 자긍심을 가질 만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 승리와 성취의 이면에 덮인 후유증은 씻어지지 않고 그늘은 짙습니다.

그로 인한 여러가지 근본적인 난제가 남아 있습니다.

예를 들면, 개발 독재의 잔재, 정치적 포퓰리즘, 민주적 리더십의 퇴행, 경제적 불평등, 사회적 갈등은 우리 사회의 발전을 막는 장애물이고 고통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언제부터 인가 대한민국의 활력은 떨어지고 도전정신은 약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사회의 역동성은 떨어지고 내일에 대한 희망은 옅어졌습니다.

 

'매력국가이던 대한민국의 활기가 떨어지고 도전정신은 약해져 가'

 

좌절과 탄식, 분노와 분열, 미움과 증오의 언어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경제침체’, ‘양극화’, ‘승자독식’, ‘약육강식’, ‘헬 조선‘, ‘저출산 고령화’ ‘무너진 계층사다리’. 1 99의 사회, 금수저와 흙수저’.

참으로 슬프고 답답한 현실입니다. 하지만 우리 정치는 무능했고 리더십은 방황하면서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 내지 못했습니다. 특히 젊은 세대는 낙담과 상실감을 깊이 느끼고 있습니다.

 

‘탄핵 이후’ 우리는 새로운 시대적 과제를 떠안았습니다. 오랜 악습과 모순의 퇴출, 부조리와 폐단의 타파가 시급하고 절실합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뛰어넘는 대변혁을 모색해야 할 절체절명의 시대 상황입니다.

대한민국은 위기 상황입니다.

촛불이 이룩한 역사의 전진은 그 날 밤 the great evening 이 아닌 그 다음 날의 아침 the morning after에 의해 완성됩니다.

이제는 낡은 것들을 바꾸고 쓸어내고, 새로운 것, 바른 것들이 채워지고 들어가야 합니다.

만일 빈자리에 새로운 것, 바로 잡은 것들을 빨리 채워 넣지 못하면 그 자리는 다시 낡은 것들로, 로는 혼란과 무질서와 같은, 더욱 더 나쁜 것들이 채워지게 됩니다.

 

'낡은 것들을 쓸어낸 다음 그 자리에 새로운 것이 채워져야 개혁이 완수되는 것'

 

오늘 이 자리는 우리 국민이 ‘희망의 나라로’ 가는 길을 같이 생각해보고 공유해 보자는 자리입니다. ‘희망의 나라로’를 성공시키기 위한 저의 접근 방식과 전략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우리나라는 자학하고 비하할만한, 만만한 나라가 아닙니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은 분명히 주요국가의 하나로 부상해 있습니다.

하지만 혼선과 방황, 상실의 어두움은 깊어지고 있습니다.

많은 지식인들과 정치인들이 해결책, 그리고 위기 탈출방법, 정책을 양산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본질적 난제들, 악습과 모순은 타파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저는 정치인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또 저는 지식인들에게 질문하고 싶습니다.

정말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모르는 것일까요?

저의 결론은 아닙니다. 우리는 해답을 알고 있습니다. 타개책도 갖고 있습니다.

위기와 혼란의 요인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 핵심 원인이 무엇일까요?

무엇이 문제일까요?

저는 지금의 대한민국에 없는 것이 분명히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공동체를 작동시키는 기반이 허술하고, 문화가 취약하다는 사실 입니다.

국가 이슈와 사회적 논란에 대한 소통, 공감, 토론, 공유, 상생, 조화, 화합의 문화가 빈약합니다.

이에 대한 정치 지도자들의 기량도 미숙합니다. 지도자들은 문제를 말로만 강조할 뿐 실천 방안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 현실을 돌아봅시다.

‘토론’과 ‘타협’과 ‘합의’의 문화가 얼마나 빈약합니까.

물론 저도 예외가 아닙니다.

 

'우리 사회의 토론, 타협, 합의의 문화가 얼마나 빈곤한지 점검해 봐야'

 

우리의 토론문화는 대체로 일방적입니다.

경청은 토론의 출발점인데, 인내심 있게 상대방의 의견을 들어주는 마음가짐이 부족합니다.

토론이 충분하지 않으니 흔쾌한 타협이 이루어질 수 없겠지요. 타협은 상대방 처지에서 헤아리고 살펴보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정신, 구동존이(求同存異)와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정신이 필요한데, 그런 문화가 자리 잡지 못했습니다.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면서 큰 틀에서 타협을 추구하는 지혜와 기량이 부족합니다.

 

그 대신에 우리 사회는 극단적 명분론이 판치고 있습니다. 정치인은 입으론 타협을 외치지만 실제로는 회피합니다. “타협은 배신이다, 타협은 야합이다” 라는 일그러진 강경론과 냉소주의 때문입니다.

 

3류 정치가 타협 문화의 정착을 막습니다. 우리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바닥입니다.

절제와 양보, 공존과 공영의 정신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 대신 적과 동지로 나누는 이분법이 득세합니다. 정치권은 사회적 대립과 세대 분열, 계층 갈등과 분노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그런 풍토에선 패권주의, 완장, 살생부, 블랙리스트가 기승을 부립니다. 선거 때만 되면 일전불사의 각오를 새깁니다. 집권하고 나면 이른바 이념적 보수와 진보, 또는 기득권과 도전자 간에 대립과 혼란이 일어납니다. 결국 모두 실패하고 서로 상처를 입히는 게 우리 정치의 비극이자 희극입니다.

 

'모든 사람을 적과 동지로만 나누는 이분법적 대립이 득세하고 있어'

 

토론과 타협, 합의 문화의 빈곤은 치명적인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타협과 합의에 대한 정치지도자들의 무능과 실책은 만성적인 사회 갈등과 국론 분열을 낳았습니다. 그런 결핍과 역량부족이 이 나라를 선진국 문턱에서 늘 좌절 시키고 중진국에 머물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이제 약자의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습니다. 개천에서 용이 멸종된 원인은 대타협의 정신의 실종이라고 저는 감히 말씀을 드립니다.

 

이 같은 한심한 풍토는 역설적으로 대 변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토론과 타협, 합의가 ‘대통령 탄핵 시대이후의 긴급한 명제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도 생각합니다.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이 과연 있을 것인가?

촛불은 혁명이라고 하지만, 혁명 다음 날이라고 뭐가 바뀌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어젯밤의 사람이 오늘 아침 똑같은 사람 아닌가?

모든 새로운 것은 결국 서로 간의 ‘새로운 타협과 새로운 합의’를 바탕으로 한 창조적 재구성 아닌가. 대타협의 부두에서 만이 새로운 대한민국호가 출범할 수 있고, 대타협만이 대변혁의 바탕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대타협은 공동체가 번영하기 위한 최상의 사회 기량이고 최고의 정치 문화입니다.

그것은 사회의 지속적인 활기를 보장하는 역동적인 에너지입니다.

그것은 사회의 갈등과 마찰을 줄이고 푸는 특별한 윤활유(潤滑油)입니다. 타협은 흩어져 있는 국민적 역량을 신바람 나게 모아주는 기폭(起爆)제가 될 수 있습니다. 대타협은 흔쾌한 공존(共存)과 공영의 작동 엔진 입니다. 대타협은 새로운 나라를 도모하는 국가적 전략 자산(資産)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특히 정치인들은 대타협을 두려워하거나 회피해선 안 됩니다.

 

'대타협은 공동체 번영을 위한 최상의 사회기량, 최고의 정치문화'

 

제가 규정하고 말하는 대타협은 엄격한 원칙과 정도가 있습니다. 대타협은 밀실의 배신이 아닙니다. 용기 있는 양보입니다. 대타협은 기회주의적 야합이 아닙니다. 자신감 넘치는 협력입니다. 대타협은 현재 상태로의 유지가 아닙니다. 희망찬 미래로 가는 도약입니다. 대타협은 그 원칙과 정신으로 연마되고 가꾸어져야 합니다. 대타협은 전략이 필요하고 또한 지혜가 요구됩니다.

 

그렇습니다. 대타협은 대한민국을 재구성, 재생시키는 원동력입니다.

대타협은 너와 나, 국민 모두가 역사의 전진에 나서는 추진체입니다. "타협은 강자와 승자가 자신의 것을 양보하면서 시작됩니다." 그렇지요. 대타협 없이는 희망의 나라로 갈수 없습니다.

그러면 대타협은 어떻게 작동될 수 있으며, 어떤 전제와 조건, 어떤 환경과 문화가 필요할까요.

 

타협의 문화는 위로부터 확산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이 1 99로 나뉘어 있다면, 그것은 1의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1% 스스로 국민의 존중과 신뢰를 얻는 데 실패했고, 바뀌어야 할 때 바뀌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는 대한민국을 책임져야 할 의무를 갖고 있습니다. 자발적이고 선제적 양보는 타협의 문화를 빛나게 할 수 있습니다. 가진 쪽에 먼저 양보해야 합니다. 위에서 먼저 양보해야 합니다. 아래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대타협을 위해, 1에서부터 양보하고 99의 고통을 덜어줘야'

 

우리 사회는 권위주의적 위계문화가 서양보다 훨씬 강합니다. 이 같은 권위주의 문화는 패거리 문화와 결합해서 남을 억압하는 패권주의로 가동이 됩니다. “우리가 다수인데 왜 문제야”, “우리가 주류니까 우리를 따라라”, 다시 말해 다수나 강자가 되면 상대방의 무릎을 꿇게 하고, 줄을 세우며, 다른 의견을 좀처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소수의 생존이 걸린 문제조차 다수의 이익 속에서 무시되고,

그 우선순위가 밀리는 것을 우리는 많이 봅니다. 그렇다면 과연 생존이 걸린 소수가 이에 타협하고 법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타협은 강자와 다수 세력의 양보와 절제로 확산됩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절제의 미덕, 양보의 메커니즘은 턱없이 모자랍니다. 또한 우리 사회는 사죄와 관용의 문화도 부족합니다. 타협과 합의가 부족한 사회에서 사죄와 관용의 문화가 부족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죠. 합의를 못하고 사죄하는 순간 몰락하는데 누가 용서를 구할까요? 사죄하지 않는데 어떻게 관용의 힘이 발휘 되겠습니까? 사죄와 관용의 미덕도 강자의 절제와 양보로 정착됩니다.

 

대타협은 한통속의 결탁이 아닙니다. 대타협은 법과 원칙의 준수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흔쾌하게 공감하는 타협이 이루어집니다.

1%의 지도층은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솔선수범을 보여야 합니다. 이것은 비단 정치에 국한되지 않으며 경제, 사회, 문화, 언론 등 모든 분야의 지도자들과 구성원들에게 적용됩니다.

원칙과 법치의 풍토는 대타협의 환경을 마련해줍니다.

 

'대타협을 위해서는 상위 1%의 법과 원칙 준수가 먼저'

 

언론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중앙일보와 JTBC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탄핵정국과 관련 JTBC에 대한 원망과 의심, 책임을 묻는 어떤 논리도 저는 수긍하지 않습니다.

언론은 언론자유, 공정보도 등 여러 가지 측면의 가치와 원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것이 빠지면 그것은 언론이라고 할 수 없는 한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바로 진실추구라고 생각합니다.

보도의 자유든, 공정성이든 그것이 진실과 사실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어떤 의미도, 가치도 소용없습니다. 광장의 불타는 촛불은 진실을 추구하는 JTBC의 원칙적 자세가 일조했다고 생각합니다.

정권의 유, 불리를 따져 진실을 감추고, 왜곡시켰다면 그 같은 보도는 나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제가 대단한 무엇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말도 저에게는 참으로 모욕적입니다. 제가 한 유일한 일이란 편집권의 독립을 존중한 것입니다. 경영권과 편집권의 분리라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 언론을 살리는 유일한 지혜라고 생각해왔습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공개적으로 중앙일보와 JTBC 식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합니다.

손석희 사장에게도 따뜻한 격려의 말을 전합니다. 손사장이 보여주었던 진실추구의 열정과 원칙 준수의 자세는 시청자들에게 강렬하게 전달되었고 JTBC 보도의 경쟁력 있는 전통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제 제가 떠나온 곳에서 일하시는 분들에게 해드릴 수 있는 말은 딱 한가지입니다.

“제가 안에 있든 밖에 있든, 지금까지 하시던 대로 일을 해 주시라.

 

'중앙일보와 jtbc 식구들, 지금까지 하시던 대로 일 해주시라'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업가의 성취동기, 부국의 애국심, 경제성장의 업적과 민생의 기여 자세는 평가 받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기업의 존재 이유는 함께 일해서 함께 잘 살기 위해 있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기업이 혼자 잘사는 도구가 된다면 정부나 국민이 기업의 가치를 인정하고 보호하고 지원해 줘야 합니까? 기업 역시 국민을 먹여 살리는 도구이자, 가장 효율적 수단이기 때문에 그 가치를 인정받는 것입니다.

 

법을 지켜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을 것입니다. 기업가를 포함한 한국의 모든 지도자들은 스스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을 없애야 합니다. 원칙이 작동해야 타협은 건강해집니다. 법과 원칙을 무시하는 담합과 적당주의는 타협의 기반을 무너뜨립니다.

 

대타협은 열린 대화, 열린 정보로 가능합니다. 닫혀 있는 사회에서 대타협은 불가능합니다.

모든 것이 오픈 되고 투명하면서 정보가 공유되어야 서로 간의 입장을 이해한 상황에서 타협이 이루어집니다. 사실이 은폐되고, 차단된다면 어떤 경우든 사회적 신뢰가 축적될 수가 없으며 타협의 문화는 번창할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개방과 투명성은 정부 부문에서 민간 부문으로 확산되어야 합니다. 정부가 권위의 뒤에 숨어 자신들에게 책임이 돌아오는 것을 회피해서는 안 됩니다. 정부가 소통의 문을 닫고 숨기면, 국민도 국가 시책을 놓고 대화하고 타협하고 합의해 줄 수가 없습니다.

다시 말해 정부에 대한 국민 자세는 냉소, 저항, 비타협적으로 바뀝니다.

 

어제 세월호 선체가 인양되는 광경을 TV로 보았습니다. 녹슬고 찌그러진 선체를 보니 가슴이 무척 아려 왔습니다. 오랜 시간 가족의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한 세월호 유족의 한을 모든 국민이 공감하였다고 믿습니다.

 

세월호를 보고 우리는 ‘진실을 인양한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가리고 숨겨진 진실들이 남아 있는 한 타협과 합의는 한계를 갖고 충분히 작동되지 않습니다.

 

'가리고 숨겨진 진실들이 있는 한 타협과 합의는 작동하지 않아, 세월호 봐라'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 사회, 대한민국 대타협의 열쇠는 바로 지난 수십 년 동안 기득권과 특권을 누려온 강자와 승자가

먼저 변해야 하고, 먼저 양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제가 말하고자 하는 대타협의 위대함 입니다. 타협과 합의를 위해 열린 마음으로 소통과 토론을 하고, 강자와 승자가 절제하고 양보해 타협을 이끌어 내고, 결국 약자와 패자(敗者)로부터 동의를 얻음으로써 합의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많은 대선주자들이 적폐청산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적폐(積弊) 청산’- 우리 역사 속에서 미흡한 청산, 그리고 불충분한 단죄가 이 나라의 발목을 잡았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일정 수준 저도 동의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 이른바 적폐청산이 이번에도 실패할 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물론 ‘인정사정 보지 않는 적폐청산’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과거 몇 번 그러한 시도가 있었습니다. 법과 원칙, 제도에 기반 하는 타협과 합의 과정을 생략하고 지지자들과 시위자의 힘을 빌려 쓸어버리겠다는 위험천만한 발상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방식이 합법적 범위 내에서 가능하겠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집권세력은 검찰, 국정원, 국세청 등 권력기관을 이용하려는 유혹을 강하게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국민들의 공감과 지지가 부족하면 사회적 혼란과 불안을 낳을 겁니다. 타협과 합의를 이뤄낼 방법을 찾지 못하면 다시 대결과 혼란으로 치달을 겁니다. 당한 자는 회한과 억울함 속에서 원통해하고 복수의 칼날을 갈 것입니다. 그런 방식의 가장 큰 문제는 예전에도 별로 성공한 예가 없었다는 엄연한 사실입니다.

 

악순환이 걱정됩니다. ‘네가 없어야 내가 있다. 또 내가 있는 한 너는 없다.’ 이런 식으로 해서는 적폐청산이든, 개혁이든, 혁명이든 실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단호히 말하자면 타협과 합의 없이는 단 한 가지, 한 부문의 적폐청산도 가능하지 않습니다.

 

'타협과 합의 못 이루면 적폐청산 이루기 힘들어, 다시 대결과 혼란으로 치달을 것'

 

지금 이 나라에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타협과 합의가 절실히 요구됩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부자와 서민 간의 타협, 노년과 청년 간의 타협, 보수와 진보 간의 타협,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타협, 정규직과 비정규직과의 타협, 수도권과 지방의 타협, 거기에 남과 북의 타협도 포함됩니다. 거의 국가 전 분야에 걸쳐서 토론과 조정과 타협과 합의가 필요한 중차대한 시점에 우리는 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을 ‘국민 대타협, 대한민국 대타협’이라고 부르고자 합니다.

이 나라의 다음 지도자는 토론과 타협, 그리고 합의를 바탕으로 골치 아프고 묵은 문제, 소위 적폐를 해결해서 성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대타협을 성공시킬 수 있는 역량과 지혜와 품성을 가진 지도자만이 새로운 나라를 만들 수 있습니다. 대타협의 대결단을 통해 우리는 이제 다시 활기를 찾고,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는 매력국가로의 전환점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저는 바로 그 부분을 해내고 싶습니다. 우리 사회 대변혁을 위한 조건을 마련하고 싶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 사회의 최상위 1%분들로부터 양보를 이끌어 내는 것이 제 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의 상위 1%로부터 양보를 이끌어 내는 것이 내 소임'

 

이른바 1% 스스로의 동의를 받아내지 않는다면 정부와 국회 다수라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무기력할 수 밖에 없습니다. 1%의 자발적인 양보와 참여를 이끌어내는 대타협만이 공존과 번영의 길을 열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 사회의 1%분들이 대타협의 절실함과 대타협의 탁월한 효용성을 인정하리라 믿습니다.

1%가 신바람 나게 ‘희망의 나라로’ 앞장서는 무대를 충분히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타협의 또 다른 조건은 바로 ‘눈앞의 문제부터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듯이 지금 사회 여러 곳에서 정부 지원금, 또는 복지혜택 등을 놓고 시시비비가 끊이지 않습니다. 또 당장 급한 법안이 있어도 합의에 이르지 못해 뒤로 미뤄지면서 그 같은 지원이나 제도가 필요한 당사자들에게는 극심한 고통을 주고 있습니다. 일단 현재의 고통이나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은 채, 저항이나 시위가 없기를 바랄 수는 없습니다.

 

생활고로 인한 송파 세 모녀의 비극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어느 젊은 시나리오 작가의 비참한 죽음을 또 기억합니다. 밀린 월세를 가지런히 놓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우리 국민들을 보며 우리 사회의 지도층은 무슨 논리로 책임을 회피하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 같은 슬픈 현실이 상당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생활고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국민들 보며 지도층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하나?'

 

타협과 합의의 마지막 조건은 바로 ‘시민들의 지혜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겁니다.

저는 모든 해답이 항상 현장에 있으며, 시민들의 지혜 속에 가장 정확하고 적합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타협과 합의의 과정을 투명하게 해서 시민들의 아이디어나 여론을 형성시키면 갈등과 충돌의 당사자들도 자신들의 주장들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 알게 되고 의미 있는 합의에 도달할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시민들은 해답을 제시하는 현명한 카운슬러인 동시에, 특정한 갈등과 문제들에 대한 평결을 내릴 수 있는 훌륭한 배심원단이기도 합니다.

 

'시민들 스스로 갈등과 문제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평결 내릴 수 있어'

 

여러분, 대타협의 위력, 대타협의 절실함, 대타협의 경쟁력을 이제 실감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대타협 밖에 없다고 믿습니다. 대타협만이 광장의 절박한 요구에 응답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 대한민국에 가장 필요한 것은 이 시점에는 ‘큰 타협, 큰 합의’ 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앞으로 나가지 못한 근본적 이유는 바로 우리 국민 간, 우리 사회구성원 간 모두 특히 강자와 약자, 승자와 패자, 이 사이에 타협과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다시한번 강조합니다.

대타협이란 강자가 양보하고, 약자가 수용하는 것입니다. 승자가 자기 것을 나누고, 패자가 재기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또 가해자가 사죄하고, 피해자가 관용을 베푸는 것이 바로 대타협 입니다.

 

이와 같은 국민적 대타협을 만들어 내지 못한 상태에서 정치지도자들이 말하는 이른바 적폐청산, 잔재 청소는 반드시 실패합니다. 사회 각 부문에서 대타협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정치권력 또는 정부 주도의 적폐청산은 반드시 실패한다는 역사적 교훈을 우리는 수도 없이 봐 왔습니다. 대타협의 기반 없는 이른바 적폐청산은 시대정신을 잘 못 읽은 겁니다. 그러한 일방적 적폐 청산, 정치권력과 정부가 주도하는 하향식 적폐청산은 나라를 전진시키기는 커녕 후퇴시키고 더욱 어지럽게 할 것입니다.

 

'정치와 정부가 주도하는 하향식 적폐청산 나라 후퇴시키고 혼란에 빠지게 할 것'

 

우리의 현대사 속에서 왜 역사가 뒤틀리고 개혁이 실패했는지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보고 함께 반성해야 합니다.

 

대선주자들 간에 소연정과 대연정이 충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연정은 작은 개념입니다. 대연정에서도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정치나 행정의 영역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각 분야에서 이해당사자 서로 간의 대타협이 도출되어야 합니다. 타협과 합의 없는 청산은 사회적 혼란과 미움을 퍼뜨립니다.

 

요즈음 대선주자들의 일자리 공약도 넘쳐 납니다. 하지만 당장 일자리를 정부주도로 만드는 것이 얼마나 지속 가능하겠습니까? 그것은 결국 세금으로 만드는 일자리입니다.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는 주체는 기업입니다. 저는 한국의 대기업과 재벌들이 국민들의 미래와 행복을 만들어 가는데 있어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랜 동안 많은 국민들의 합의와 지원, 그리고 헌신 속에서 우리 기업들이 이만큼 성장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교육현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재단과 교수, 학생들이 토론하고 타협해야 진정한 의미에서의 새로운 캠퍼스 문화가 탄생합니다.

그것이 진짜 개혁입니다. 기업과 노조도 마찬가지이며,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로 인한 갈등해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해당사자들이 서로 모여 토론하고 타협하고 합의를 도출하는 것 외에 무슨 방법이 있겠습니까? 정부가 주도해서 강제로 할 수 있는 시대는 벌써, 벌써 끝났습니다.

 

'이해당사자들이 서로 토론하고 타협하고 합의를 이끌어 내야 문제해결'

 

국민적 소통과 공감, 그리고 각 분야마다 치열한 토론을 통해 대타협을 이끌어야 할 시대를 우리는 맞았습니다. 그리고 타협과 합의가 이뤄졌을 때 사죄와 관용도 이루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대한민국이 ‘희망의 나라로’ 힘차게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대타협뿐입니다.

또 다시 실패의 길로 들어설 수 없습니다. 또 다른 시행착오는 용인될 수 없습니다.

 

대타협만이 새로운 것을 온전히 낡은 것의 빈 공간을 채울 수 있도록 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우리는 대타협을 통해 낡은 것을 몰아내고, 새로운 것을 불러와서 대한민국을 다시 매력 있는 나라,

온 국민이 함께 번영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대타협 과정에는 시민들의 참여와 지혜, 집단지성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것이 제가 중앙일보와 JTBC를 떠나며 마지막으로 제안했던 ‘리셋 코리아’의 취지였습니다.

 

이 나라와 이 사회로부터 무한대의 혜택을 저는 입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대타협을 이끌고 성취시키는 일에 앞장서겠습니다.  그걸 바탕으로 우리 사회의 오랜 부조리와 폐단, 악습과 모순은 정리되고 퇴출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여 대한민국을 새롭게 거듭 나도록 저의 모든 힘을 보태겠습니다. 대타협은 대결단의 용기가 필요합니다. 저는 앞장서서 그 용기를 생산하고 가꾸고 또 전파하려고 합니다.

 

'대타협으로 적폐를 청산해 대한민국을 새롭게 거듭나게 할 것'

 

저의 이 같은 철학을 “우리가 있기에 내가 있습니다”라는 저의 책 제목으로 표현한 바 있습니다. 이른바 ‘우분투’ 정신이지요.

우분투 정신이 정치와 리더십의 가치로 나타난다면 그것이 바로 국민 대타협이며, 국가 대합의 라고 생각합니다. 대타협은 우리 국민과 사회의 에너지이며, 윤활유이며, 기폭제이며, 신바람이며, 전략적 자산입니다. 대타협은 기적의 힘을 발휘 합니다.

대타협이 작동함으로써 국가와 사회의 큰일을 이루어 낼 수 있습니다.

대타협의 용기와 기량, 전략과 지혜만이 21세기 매력국가, ‘희망의 나라’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